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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遺産 国境の島 壱岐・対馬・五島 ~古代からの架け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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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노쓰지 유적

나가사키현 하루노쓰지 유적 출토품

나가사키현 사사즈카 고분 출토품

나가사키현 소로쿠 고분 출토품

가쓰모토성 성터

우치메 만

다케노쓰지

가라카미 유적

나마이케성 성터

가네다성 성터

쓰시마 섬의 거북점 풍습

쓰쓰의 적미 행사

쓰시마번 영주 소 일족의 묘지

반쇼인의 삼구족

동조여래좌상(구로세 관음당)

시미즈야마성 성터

가네이시성 성터

구 가네이시성 정원

조선통신사 두루마리그림

쓰시마번 오후나에 선창터

사스나항(사스나히나타아라타메반쇼 터)

와니우라(조선통신사 기항지, 이팝나무 자생지)

미이라쿠

묘조인절 본당

도모즈나이시 바위

다이호지 절

히노시마의 석탑군

견당사 사적

산노잔 산

견당사 사적: 미카노우라

견당사 사적: 도모지리이시 바위

견당사 사적: 긴포세

견당사 사적: 미후네사마

아오카타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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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노쓰지 유적

이키시

나가사키현에서 2번째로 넓은 평야인 후카에타바루에 자리한 하루노쓰지 유적은, 야요이시대부터 고분시대 초기(약 2200년 전~1650년 전)에 번성했던 일본을 대표하는 야요이시대의 환호 부락터로 국가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 속의 ‘위지’ 왜인전에 이키 섬은 이키코쿠로 등장하며, 야요이시대의 최첨단 교역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나가사키현 하루노쓰지 유적 출토품

이키시

하루노쓰지 유적에서는 10만 점 이상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1,670점이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하루노쓰지 유적에서는 바다를 건너 ‘이키코쿠’로 건너온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망울구슬, 마차에 장식하는 청동제 부품, 대저울에 사용하는 청동제 추, 일본 유일의 인면석을 비롯하여,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제작된 토기와 사용되었던 동전 등, ‘동아시아와의 교류 역사’를 전해 주는 자료가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나가사키현 사사즈카 고분 출토품

이키시

사사즈카 고분은 기단 위에 분구를 포갠 2단 구조로 축조되었습니다. 기단이 되는 부분은 지름 70m, 높이 3m, 분구 부분은 지름 40m, 높이 10m입니다. 사사즈카 고분에서는 거북 모양 장식금구를 비롯하여 행엽, 말띠꾸미개, 말띠연결쇠와 같은 금동제 마구류가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마구 이외에도 신라 토기가 발견되어 한반도와의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출토된 자료 중 162점은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나가사키현 소로쿠 고분 출토품

이키시

소로쿠 고분에서는 중국 북제에서 제작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2채색 도기, 신라에서 제작된 토기, 일본 국내에서는 두 가지 사례 밖에 발견되지 않은 반원형 유리제 망울구슬, 한반도에서도 발견된 금동제 단봉환두대도의 병두가 발견되어 중국 대륙 및 한반도와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토된 자료 중에 412점은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가쓰모토성 성터

이키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출병(임진왜란)을 위해 축성한 외성으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키 섬의 최북단에 위치하는 가쓰모토우라의 시로야마에, 히라도번 영주 마쓰라 시게노부가 중심이 되어 시마바라번 영주 아리마 하루노부, 오무라번 영주 오무라 요시아키, 고토 열도를 다스린 고토 스미하루 등의 협력을 받아 축성되었습니다. 가쓰모토성은 한반도로 건너가는 병사들의 식량 및 무기 등을 보급 및 수리하는 군사기지의 역할을 했습니다.

우치메 만

이키시

우치메 만은 ‘이키코쿠’의 왕도, 하루노쓰지에 기항한 고대의 선박이 왕래했던 출입구입니다. 에도시대 말기인 1861년에 만들어진 ‘이키 명승도지’에도 우치메 만의 모습이 삽화로 그려져 있는데, 만의 후미 안쪽에 펼쳐지는 마을에 유래하여 ‘후카에무라’라고 불렸던 것과 우치메 만에 많은 선박이 왕래했던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만 내에는 고지마 신사로 향하는 길이 썰물 시에만 바다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신비로운 섬도 있어 시대를 불문하고 매력적인 장소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다케노쓰지

이키시

이키 섬 최고봉(212.8m)의 산으로, 정상에는 고대부터 사용된 봉화대와 도미반쇼 초소가 설치되어 있어 국방의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것을 문헌 사료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산 정상에는 1889년 5월에 해군수로부가 설치한 ‘위도 측정표’가 있습니다. 당시 설치된 위도 측정표 중에 현존하는 것은 다케노쓰지 산에 있는 석표와 이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마다라시마 섬(사가현 가라쓰시)의 반쇼노쓰지산에 있는 석표 2군데뿐인데, 석표에 새겨진 설치 연도 명문을 통해 다케노쓰지 산의 석표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라카미 유적

이키시

하루노쓰지 유적과 더불어 번영한 야요이시대(약 2000년 전)의 환호 부락터입니다. 가라카미 유적은 교역을 통해서 다양한 철제품과 철소재를 입수하여 일본 각지로 철 제품을 공급하는 중계 기지로서뿐만 아니라 야요이시대를 대표하는 철기 생산의 단야공방이기도 하여, 동아시아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던 당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나마이케성 성터

이키시

16세기 중엽에 마쓰라당 무사단의 일원이었던 미나모토노 이치가 축성했다고 전해지는 산성으로, 성이 있던 산 정상을 중심으로 건설된 두 겹의 해자와 흙다리를 볼 수 있습니다. 나마이케성에 거주한 미나모토노 이치는 조선 왕조로부터의 신뢰도 두터워 정식 교역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1539년에 안코쿠지 절이 실시한 ‘고려판 대반야경’의 보수 기록에도 미나모토노 이치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키시립 이키코쿠 박물관

이키시

하루노쓰지 유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이키 섬의 역사를 소개하는 박물관입니다. 하루노쓰지 유적을 비롯한 이키 섬 내의 유적에 관한 자료 및 출토품을 소장 및 전시하고 있습니다. 섬 전체에 역사가 살아 숨쉬는 ‘섬 전체 박물관’으로서 섬의 정보 발신 거점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개관시간/8:45∼17:30(최종 입장 17:00) □휴관일/월요일(국경일인 경우에는 다음날), 연말(12월 29일∼31일) ※황금연휴 및 여름방학 기간 동안은 무휴 □관람료/일반:400(320)엔, 고등학생:300(240)엔, 초중학생:200(160)엔 ※( )는 20명 이상의 단체 할인 요금 □주차장/있음(승용차 101대, 대형버스 7대) □소재지/이키시 아시베초 후카에쓰루키후레 515-1 □TEL/0920-45-2731 □홈페이지 주소/http://www.iki-haku.jp/

하루노쓰지 가이던스

이키시

하루노쓰지 유적의 발굴 조사의 흐름과 복원 정비의 역사, 발굴 조사 및 복원 정비에 사용된 도구 등을 볼 수 있는 가이던스 시설입니다. 체험실에서는 곡옥 만들기, 토기 만들기, 유리구슬 만들기 등의 고대 기술 체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실외에는 고대 쌀을 재배하는 체험 논이 있습니다.

□개관시간/8:45∼17:30(최종 입장 17:00) □휴관일/연말(12월 29일∼31일) □관람료/무료(체험료는 별도 필요) □주차장/있음(승용차 34대, 휠체어용 1대, 대형버스 2대) □소재지/이키시 아시베초 후카에쓰루키후레 1092-5 □TEL/0920-45-2065 □홈페이지 주소/http://www.iki-harunotsuji.jp/

이키 후도키노오카 고분관

이키시

고분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의 이키 섬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시설입니다. 고분관에서는 이키 고분군에 관한 개요와 위치 정보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내 최대의 전방후원분 ‘소로쿠 고분’의 축조 모습을 재현한 모형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개관시간/9:00∼17:00(최종 입장 16:30) □휴관일/월요일, 연말연시(12월 29일∼1월 3일) □관람료/일반:100(80)엔, 중학생 이하:50(40)엔 ※( )는 15명 이상의 단체 할인 요금 □주차장/있음(승용차 18대) □소재지/이키시 가쓰모토초 후케후레 324 □TEL/0920-43-0809 □홈페이지 주소/-

가네다성 성터

쓰시마시

가네다성이란, 667년에 아소만의 남쪽에 축성된 산성으로 『일본 서기』에도 등장합니다. 일본은 백제군을 지원하여 벌인 백강구 전투(663년)에서 패했기 때문에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최전선 방위 시설을 쓰시마 섬에 구축하였습니다. 한국과의 교류 중 한반도와 긴장 관계에 있는 와중에도 축성 방법은 조선식 산성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백제에서 망명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쓰시마 섬의 거북점 풍습

쓰시마시

거북점이란, 바다거북의 등껍질(복갑)을 태워 그 금의 균열에 따라 한 해의 길흉을 점치는 의식을 말합니다. 에도시대에는 매년 정월 3일에 거행되어 그 결과는 쓰시마번청에 보고되었다고 합니다. 이 의식도 한반도에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며 『쓰시마 거북점 전기』에 의하면, 쓰시마 우라베 일족의 선조인 이카쓰오미가 진구 황후를 따라서 한반도에 건너가 거북점의 기술을 습득하여 돌아왔다고 합니다. 현재에는 쓰쓰 지역에만 남겨져 대대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쓰쓰의 적미 행사

쓰시마시

벼의 원생종이라고 하는 ‘적미’에 깃든 정령을 ‘신’으로 모시는 행사입니다. 일본에서는 태곳적부터 벼의 재래종이 없었다고 추정되므로 쓰시마 섬의 적미는 조몬시대 후기부터 야요이시대(2000∼2500년 전)에 걸쳐 중국의 강남 지방에서 한반도를 거쳐 전해진 벼라고 추정됩니다. 그 행사의 작법은 동아시아 각 지역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으며 쓰시마 섬에서는 쓰쓰 지역에서만 신을 모시는 의식이 계승되고 있습니다.

쓰시마번 영주 소 일족의 묘지

쓰시마시

반쇼인에는 역대 쓰시마번 영주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초대 영주 소 요시토시(1568∼1615)를 제사 지내기 위해 창건한 것이 효시입니다. 역대 영주는 조선과 일본의 교류라는 쓰시마 섬의 숙명적인 과제에 직면하여 최선을 다해 우호 관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특히 요시토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조선 왕조의 중개역할을 하였으며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는 그가 없었다면 실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본 묘지에는 요시토시 이래의 14명의 영주와 그 정실, 측실 또는 조선 외교로 공적을 세운 인물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반쇼인의 삼구족

쓰시마시

불교에서는 향로, 꽃병, 촛대(삼구족)를 불전에 놓고 향, 꽃, 등화를 공양합니다. 이 삼구족은 조선 국왕이 봉납하였다고 전해지며, 중국의 옛 청동기에 디자인한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향로는 왼발을 약간 들어올리고 입에서 향의 연기를 내뿜는 사자, 촛대는 귀여운 표정으로 위를 우러러보는 거북과, 늠름한 자태의 기품이 넘치는 학을 본 떠 조형하였습니다.

동조여래좌상(구로세 관음당)

쓰시마시

한반도의 통일신라시대(8세기)에 만들어진 동조 불상으로 구로세 관음당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육신부와 의복 부분을 별도로 만들어 조립하는 고도의 기술이 채택되어,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얼굴과 섬세하게 흐르는 듯한 옷자락의 주름은 한반도에서 제작된 불상 중에서도 단연 돋보입니다. 한반도에서 쓰시마 섬으로 전래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현재까지 구로세 지구의 주민들은 소중하게 보호하며 ‘여신’으로 숭배하고 있습니다.

시미즈야마성 성터

쓰시마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을 위해 1591년 이즈하라의 시미즈야마 산에 축조된 산성입니다. 해발 260m의 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능선 위에 이치노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가 축조되어 있고 나란히 늘어선 석루가 장대한 경관을 연출합니다. 정상에서는 이즈하라의 성하마을, 항구 그리고 이키 섬으로 이어지는 넓은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16세기 말,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고뇌를 거듭한 소 요시토시는 이 경치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가네이시성 성터

쓰시마시

쓰시마번 영주 소 일족이 거주하던 성터로, 시미즈야마 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528년 소 일족의 내분으로 이전에 거주하던 성 이마야시키의 ‘이케노야카타’가 소실되자 그 후 영주 소 마사모리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1678년에 사지키하라성이 완공될 때까지는 소 일족이 거주하는 성으로 사용되었고 그 후에는 일본의 관문으로 조선통신사의 영빈관 역할도 수행하였습니다. 현재에는 망루문이 복원되었고 돌담의 일부도 남아 있습니다. 에도시대에 그려진 그림(현립 쓰시마 역사민족자료관 수장)과 맞추어 보면 얼마나 거대한 규모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구 가네이시성 정원

쓰시마시

에도시대 17세기 말경, 쓰시마번 영주 소 일족이 거주한 가네이시성 내에 조영된 정원입니다. 소 일족의 문서 『매일기(每日記)』에는 1690년부터 1693년까지 3년에 걸쳐 ‘성’에 ‘신지이케 연못’을 조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종전 후, 이 정원은 매몰 상태에 있었지만 사적명승으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1997년에서 2004년까지 7년에 걸쳐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옛 모습을 복원하였습니다. 쓰시마번은 조선통신사를 이곳에서 영접하고 수면에 비치는 달을 보며 조선과 일본의 영원한 우호를 염원하면서 정원에서 우호를 다졌을 것입니다.

조선통신사 두루마리그림

쓰시마시

쓰시마 섬에는 조선통신사에 관한 두루마리 그림이 2종류 전해지는데, 거기에는 쓰시마번이 통신사의 행렬을 선도하고 경호하는 풍경이 그려져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 후, 쓰시마번은 단절된 조선과 일본의 교류를 재개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여 1607년에서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사절단을 맞이하였습니다. 본 두루마리 그림은 17∼18세기에 하나가 제작되었고 다른 하나는 19세기에 제작되었는데, 2015년에 ‘쓰시마 소 일족 관계 자료’의 하나로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행렬이라는 긴장감 넘치는 공간에 ‘짚신 끈을 묶는 사람’이나 ‘짖고 있는 개’ 등이 그려져 한가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쓰시마번 오후나에 선창터

쓰시마시

쓰시마번이 1663년에 만든 선거(船渠·도크)입니다. 이즈하라항의 남쪽에 위치하는 구타우라에 인공 후미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에도시대, 동서남북으로 교역한 선박이 이곳으로 귀항하여 선박 수리 등을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서적 『해동제국기』(1471년 간행)에는 ‘구타우라 조선’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오후나에 선창’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선거의 기능을 수행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존하는 선창 중에 이 정도 규모와 당초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은 일본 내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어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선창 유구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나가사키현립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

쓰시마시

쓰시마 섬에 전해지는 역사 자료, 미술·공예 자료, 민속 자료 등 쓰시마 섬의 역사를 소개하는 자료관입니다.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하고 무역을 독점해 온 쓰시마번은 약 12만점에 이르는 방대한 문서·기록류인 ‘쓰시마 소 일족의 문서’가 남아 있으며, 그 중 약 8만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개관시간/9:00∼17:00 □휴관일/월요일(국경일인 경우에는 다음날) 연말연시(12월 28일∼1월 5일), 자료 점검 정리기간(연 1회 10일간) □관람료/무료 □주차장/있음(승용차 약 4대) □소재지/쓰시마시 이즈하라마치 이마야시 668-1 □TEL/0920-52-3687 □홈페이지 주소/http://www.pref.nagasaki.jp/section/edu-tsushima/

사스나항(사스나히나타아라타메반쇼 터)

쓰시마시

사스나(佐須奈)항은 조선으로 통하는 현관문 역할을 하며 고대부터 번성한 양항으로 조선통신사가 상륙한 곳입니다. 에도 시대에는 쓰시마번주 소 요시자네(義真)가 히나타(日向)와 가게(陰) 2곳에 아라타메반쇼를 설치하여 밀항자와 밀무역을 감시했습니다. 히나타반쇼의 돌담과 우물이 현재에도 잔존하여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이 지역을 통해 ’고코이모(考行芋)’라 불리던 고구마가 한반도에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와니우라(조선통신사 기항지, 이팝나무 자생지)

쓰시마시

와니우라(鰐浦)는 과거 한반도와의 통교 무역 창구 역할을 한 조선통신사 상륙지 중 하나입니다. 항구 서쪽에는 조선통신사 선박의 정박지라 불리는 야비츠(矢櫃)가 있으며 현재에도 그 석적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부터 대륙으로 통하는 창구였던 쓰시마를 상징하는 대륙계 식물인 이팝나무의 자생지이기도 합니다. 또한 한국과 약 50km 거리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날씨 좋은 날이면 한국 부산시의 거리를 볼 수 있습니다.

미이라쿠

고토시

일본의 최서단에 위치한 고토 열도는 견당사가 파견된 시대, 동중국해를 횡단하여 당나라로 향하기 직전의 최종 기항지가 된 장소입니다. 『히젠국 풍토기』에는 ‘미네라쿠노사키’라고 기록되어 있고 근처에는 견당사 선박에 음료용수를 공급한 우물이라고 전해지는 ‘후젠고’ 등, 견당사와 깊은 관계가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10세기의 『가게로 일기』에서는 ‘망자를 만날 수 있는 섬∼미미라쿠노시마∼’라고 소개되어 있으며 후대에는 이국과의 경계에 있는 섬, 또는 망자를 만날 수 있는 서방정토의 섬으로 널리 노래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묘조인절 본당

고토시

고토 열도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806년에 고보대사 구카이가 당나라에서 귀국하는 도중에 이 절에 머물며 동쪽 하늘에 반짝이는 샛별을 길조라고 생각하여 묘조안(明星庵)이라 명명했다고 전해집니다. 고토 일족의 영주가 대대로 소망을 기원하는 절로 1778년에 재건된 본당의 격자 천장에는 가노파의 화가가 그린 121장의 화조화가 극채색으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도모즈나이시 바위

고토시

견당사 선박의 마지막 정박지였던 기시쿠마치 시라이시에 위치한 이 바위는 견당사들이 선박 수리와 식료 보급, 순풍을 기다리기 위해 입항했을 때,뱃줄을 매어두었다고 전해집니다. 견당사들의 목숨을 건 위업을 찬양하기 위해 현지에서는 작은 사당을 지어 이 바위를 어업, 해상안전의 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주민들의 손으로 소중하게 지켜 오고 있습니다.

미치노에키(휴게소) 겐토시 후루사토칸

고토시

견당사 관련 자료 전시, 『만요슈』, 『가게로 일기』 등 고전 속의 미이라쿠를 소재로 한 노래를 통하여 미이라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요 극장에서는 견당사와 만요를 테마로 한 영상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고토 열도의 특산물 판매소와 수산물 직판장, 향토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병설하고 있어, 고토 열도의 먹거리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개관시간/점포·매점 9:00∼18:00, 레스토랑 11:30∼14:00 □휴관일/연말연시 □관람료/극장 견학 일반:310(260)엔, 어린이:210(150)엔 ※( )는 15명 이상의 단체 할인 요금 □주차장/있음 □소재지/고토시 미이라쿠마치 하마노쿠리 3150-1 □TEL/0959-84-3555 □홈페이지 주소/http://www.kentoushi-furusatokan.jp/

고토 관광역사자료관

고토시

국방을 위해 에도시대에 마지막으로 축성된 일본에서 유일하게 바다에 면한 성터인 이시다성(후쿠에성)터에 세워진 자료관입니다. 후쿠에지마 섬을 중심으로 한 고토 열도의 고고 자료, 역사 자료, 미술공예품, 자연과 생활, 축제 등, 고토 열도의 역사와 문화를 통째로 배울 수 있습니다.

□개관시간/9:00∼17:00(최종 입장은 폐관 30분 전, 6∼9월은 18:00 폐관) □휴관일/연말연시(12월 29일∼1월 3일) □관람료/일반:230(190)엔, 고등학생·대학생:170(140)엔, 초중학생:110(90)엔 ※( )는 20명 이상의 단체 할인 요금 있음 □주차장/있음(승용차 20대) □소재지/고토시 이케다마치 1-4 □TEL/0959-74-2300 □홈페이지 주소/http://www.city.goto.nagasaki.jp/contents/special/index059.php

다이호지 절

고토시

당나라에서 귀국한 구카이(空海)가 진언밀교를 전파했다고 전해지며 ‘서쪽의 고야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일본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중국과 가까운 다마노우라(玉之浦)에 있는 이 절은 간사이, 대륙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남북시대의 오중층탑(쓰시마시 유형문화재)과 범종(나가사키현 유형문화재)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히노시마의 석탑군

신카미고토초

중세부터 근세에 걸쳐서 축조된 오래된 무덤군. 70기 이상의 석탑이 겹겹이 늘어서 있는 풍경은 실로 압권으로, 간사이 지방의 화강암과 후쿠이현 와카사 지방의 응회암 등 섬 밖에서 가져온 석재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대륙과의 교역품을 운반하고 돌아온 배에 밸러스트로서 가져 왔다고 전해져 수도와 대륙을 왕래한 해상 교역의 거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사적입니다.

견당사 사적

신카미고토초

나카도리지마 섬에 위치한 견당사 관련 사적(사진은 ‘히메 신사’). 견당사 선박이 3일간 체류한 것에 유래하는 지명 ‘미카노우라’ 주변에는 견당사 선박의 돛을 수리했다고 여겨지는 ‘긴포세’, 견당사가 안전한 항해를 기원했다고 하는 ‘미후네사마’가 있습니다. 또한, 견당사 선박이 순풍을 기다리는 항구로서 『히젠국 풍토기』에도 등장하는 현재의 아이코와 아오카타 주변에는, 견당사가 안전한 항해를 기원했다고 전해지는 ‘히메 신사터’, 견당사 선박의 뱃줄을 매어두었다고 전해지는 ‘도모지리이시 바위’가 있습니다.

산노잔 산

신카미고토초

견당사 선박을 타고 당나라로 건너간 사이초 스님이 귀국 후, 당나라에 무사히 다녀왔다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개창했다고 하는 산. 산기슭에 이치노미야, 산중턱에 니노미야, 산정상에는 산노미야가 있으며 니노미야에 인접한 암굴 내에 봉납된 거울 중에는 대륙과의 교류를 나타내는 해외에서 만든 거울이 있습니다.

아오카타 신사

신카미고토초

옛 이름은 ‘산노미야’라고 하며, 산노잔 산의 망배소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카미고토초에서도 손꼽히는 오래된 신사로, 매년 11월에는 국가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가미고토 가구라’가 봉납됩니다.